늦었지만 그래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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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출장중 작성일2012.02.01 조회3,866회 댓글1건본문
우리가 살고 있는 완사, 작팔리에 대한 지명유래입니다.
이곳에 처음 이사 왔을때 찾아 본것인데.. 우연히 다시 보여서 올립니다.
완사(浣紗=빨래를 함)
: 명칭은 옥녀봉 전설에 따라 “비단”을 짜서 씻었다고 한데서 나온 말.
이곳에 처음 이사 왔을때 찾아 본것인데.. 우연히 다시 보여서 올립니다.
완사(浣紗=빨래를 함)
: 명칭은 옥녀봉 전설에 따라 “비단”을 짜서 씻었다고 한데서 나온 말.
옥녀봉전설 : 옥녀라는 아가씨가 용모도 아름답고 품행도 단정한데다 베짜는 솜씨까지 훌륭
했다 이 아가씨는 베를 짜서 덕천강에 씻어(浣紗=빨래를 함) 팔아 살았다.
마침 인근을 지나던 민도령이 옥녀에게 반하여 청혼하였으나 옥녀는 과거에 급제하면
허락하겠다고 한다. 민도령은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길에 오르고,
옥녀 또한 민도령의 과거급제를 예견하고 옷감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 무렵 고을 사또 행차중 옥녀를 탐하여, 민도령을 위한 옷감을 모두 잘라버렸다.
이에 낙담한 옥녀는 덕천강에 몸을 던지고,
사또 또한 급사, 민도령도 과거급제후 금의환향중 이 사실을 알고 강물에 투신하여 죽었다 한다.
이후 이 벼랑끝을 지나는 혼인행차는 어김없이 화를 당했고 이를 위로하기 위해 옥녀봉과
완사라는 지명이 생겼다한다.
했다 이 아가씨는 베를 짜서 덕천강에 씻어(浣紗=빨래를 함) 팔아 살았다.
마침 인근을 지나던 민도령이 옥녀에게 반하여 청혼하였으나 옥녀는 과거에 급제하면
허락하겠다고 한다. 민도령은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길에 오르고,
옥녀 또한 민도령의 과거급제를 예견하고 옷감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 무렵 고을 사또 행차중 옥녀를 탐하여, 민도령을 위한 옷감을 모두 잘라버렸다.
이에 낙담한 옥녀는 덕천강에 몸을 던지고,
사또 또한 급사, 민도령도 과거급제후 금의환향중 이 사실을 알고 강물에 투신하여 죽었다 한다.
이후 이 벼랑끝을 지나는 혼인행차는 어김없이 화를 당했고 이를 위로하기 위해 옥녀봉과
완사라는 지명이 생겼다한다.
작팔리(作八里)
작문팔수(作文八首)의 문장으로 병풍형(屛風形)의 산으로 둘러쌓인 마을이라 작팔(作八)이다.
또는 선인(仙人)이 독서하였다는 자리가 흡사 상(床)을 놓고 공부하는 형국이고
골짜기의 이름이 형국에 맞추어 붙여졌으니
즉, 신선이 강림(降臨) 하였다는 “강선(降仙)곡(谷)” 배움터가 있었다는 원학당(元學堂)골,
벼루의 연석(硯石)골, 벼루의 연수(硯水)골, 붓(筆)골, 먹(墨)골, 장지(張紙)골,
글을 읽은 독(讀)골 등 8골이 있으니 혹설(或說)은 작팔 동명(洞名)이 여기에 연유라고도 한다.
작팔과 구몰 2개 마을로 형성되었다.
또는 선인(仙人)이 독서하였다는 자리가 흡사 상(床)을 놓고 공부하는 형국이고
골짜기의 이름이 형국에 맞추어 붙여졌으니
즉, 신선이 강림(降臨) 하였다는 “강선(降仙)곡(谷)” 배움터가 있었다는 원학당(元學堂)골,
벼루의 연석(硯石)골, 벼루의 연수(硯水)골, 붓(筆)골, 먹(墨)골, 장지(張紙)골,
글을 읽은 독(讀)골 등 8골이 있으니 혹설(或說)은 작팔 동명(洞名)이 여기에 연유라고도 한다.
작팔과 구몰 2개 마을로 형성되었다.
그리고 큰들연습실 가까이 있는 원전 삼거리는 이순신 장군의 백의 종군길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수곡, 원전삼거리, 곤양을 지났다고 합니다. 산청큰들 창고 있는곳도 역시 그 앞으로 이순신 장군이 지나가셨고 바로 뒷산 백마산에는 2번에 걸쳐 직접 올라가서 전술적 지형을 살피셨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큰 기운이 서린곳에 우리 큰들이 자리하고 있네요.
댓글목록
ㄱㅁㅇ님의 댓글
ㄱㅁㅇ 작성일
그냥 지나가버리는 길에도 제가 모르는 역사가 있다는 것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살아온 이 땅에는 예날부터 살아오신 분들의 기운이 아직까지 남아 있고
제가 그 기운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