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들 논농사 이야기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볍씨 작성일2011.08.15 조회4,314회 댓글8건본문
가을의 시작이라는, 입추가 지난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네요.
농사를 짓다보면 일년 24절기가 얼마나 중요하고 시기적절한지..
선조들의 지혜에 놀랄 때가 많습니다.
이제 일주일만 지나면 더위가 물러간다는 처서..
처서가 지나면 김장배추를 심는다는군요..
수수, 율무, 옥수수, 메밀, 콩,... 곡식작물들이 꽃을 피우고 나서
알곡의 자태가 조금씩 드러나는 모습은 어찌나 신기한지... ㅋ
큰들 농사꾼은 벌써부터, 가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오늘은 논농사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여름 내내, 아침저녁으로 논둑에서 어슬렁거리던 시간....
처음 짓는 벼농사를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니
앞,뒤,옆논은 어떤지 살펴보느라 바쁘고, 마음졸이는 시간도 그만큼 많았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어른들 하시는 걸 보니... 벼농사는 그냥, 논둑에서 바라만 보면 저절로 되는 줄 알았어요.. ㅜㅜ..ㅋ)
밀을 거두고 나서 볍씨가 싹트고, 자라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때
이미 다른 논에서는
이른 봄부터 모판에서 자라 옮겨심어진 벼들이
하루가 다르게 쑥쑥자라는데...
우리 논에 벼들은 어찌나 더디게 자라는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괜스레 속이 타고.....
"대기만성"이라...ㅋㅋㅋ 혼잣말도 해보고,
늦게 머리가 트이고, 늦게 철드는 아이들도 떠올려보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더군요.. ^^
그래도 늦게 뿌린 씨앗이니 늦게 자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정성껏 돌보았습니다.
출발선이 한참이나 다른데 어찌 나란히 달릴 수 있겠나..
아직 결승점은 멀었다.. 하는 마음으로 말이죠.
(큰들에서 하는 벼농사는 마른논에 볍씨를 직접 뿌리는 "건답직파"이고, 무농약, 무경운의 태평농법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름내내 많은 비가 왔고, 태풍에, 바람이 심한 날도 있었는데..
그래도 벼들은 매일매일 자라나더군요.
에이,,,, 오늘은 자라기 싫으니까, 너무 더우니까, 비가 많이오니까, 여기까지만 자랄까 !
그런 게으름도 없이 꾸준히 자라고, 열매를 맺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생장에 집중하고 있는
벼를 보고 있자면...
벼들이 뭐라고 이야기하는 소리(괜찮아, 기다려봐 !) 하는 목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다른 논에 비해 농약도 치지 않고 그저 잘 자라라고 응원만 하고 있는
제 자신은 너무 미안해지기만 했던 날이었습니다.
무성히 자라는 풀들은 뽑고 돌아서면, 어찌그리도 빨리 자라는지...ㅋㅋ
그래도!!!,
호기심반 기대반으로 시작한 태평농법으로 짓는 벼농사는 참 즐거웠습니다.
벼포기보다 키가 작은, 어린 고라니 새끼를 만나서 함께 논 여기저기를 뛰어다닌 날도 있었고
황로와 중백로 여러마리가 날아왔던 날에는 숨죽이며, 환호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은 벼 잎사귀 끝에 거미가 집을 짓고 있던데,
벼 잎을 갉아먹은 녀석은 또 누구인지 아직 찾아내지 못했네요..^^
혹시 온동네 방아깨비, 여치, 메뚜기가 모두 우리논으로만 놀러온 것은 아닌지... ㅋㅋ
수많은 생명이 꿈틀거리는 논,
그 곳에서 자라는 수천 수만포기의 벼들 중 딱 하나의 이삭이 올라온 것이
오늘하루... 엄청난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 한개의 이삭이 올 가을,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요?
이삭 하나에 마음이 풍선같이 떠오를까봐 꾹꾹 눌러두었다가,,
그래도 무지 기쁜건 사실이니까, 이렇게 함께 나누어봅니다.ㅋㅋ
정성을 쏟고 시간이 흐르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는 날도 오겠지요 ?
결과가 어찌되었던 그 크기에 목숨걸지 않고,
그 과정 속에 숨은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농사꾼이 되고 싶습니다.
마당극 공연에, 사물놀이 강습, 캠프에 이르기까지..
큰들 단원들 모두가 현장에서 구슬땀 흘리느라 바쁜 와중에도,
모두 함께 마음을 나누고, 힘을 보태어 짓고 있는 이 농사가 즐겁고 신나는 !!
이제 겨우 햇병아리, 1년차 농사꾼 !!
행복한 웃음으로만 농사짓는 부지런한 큰들 농사꾼이 되고 싶습니다.
언제나 무한한 응원과 지지를 보내주시는 많은 분들, 참 고맙습니다. ^^

▲ 한 포기의 벼 이삭이 주는 커다란 행복 ^^


▲ 다리는 하얗고 배는 초록색... 이렇게 예쁘고 앙증맞은 거미가 있구나... 싶네요 ^^
둥그렇게 휘어진 벼 잎사귀도 정말, "작품" 스러운 느낌 ,, ㅋㅋ

▲ 큰들 논에 찾아온 "황로" 가족과 중백로 한 마리... ^^
논바닥에서 뭐, 맛있는 거라도 찾았을까요 ?

▲ 논에가면, 이렇게, 파란 하늘을, 누워서, 한없이 볼 수 있어요.. ^^
댓글목록
부끄..님의 댓글
부끄.. 작성일한없이... 존경스러워... ㅠㅠ
사랑해요~님의 댓글
사랑해요~ 작성일
농산꾼~~님!!!
사랑해요!!!
할배님의 댓글
할배 작성일
멋있다
이 글 읽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 지고 즐거워지고 웃음이나고 거저 행복해진다
자주 글 올려주세용
ㅇㅊ님의 댓글
ㅇㅊ 작성일
글도 사진도
정말 정말
예쁘네요. ^^
학생님의 댓글
학생 작성일
와~
글을 읽고있자니...
평화롭고 마치 어린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느껴지네요~
방순님의 댓글
방순 작성일
정말 글도, 사진도, 이 글 쓴 사람도 모두 아름답네요.
전문 농사꾼(?)도 감탄하고 돌아간
큰들 1년차 초보농부의 진정 가득한 농심^^
선배니~임님의 댓글
선배니~임 작성일저도 언젠가 농사짓는 게 꿈이랍니다. 지금은 찾기 힘든 우리 종자들을 찾아다가 뿌리고 거두고 다시.. ^^ 배우러가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꾸이님의 댓글
꾸이 작성일완전멋지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