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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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배추씨 작성일2011.09.23 조회4,174회 댓글5건본문
며칠 사이에 아침저녁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비도 많이오고 뜨겁기도 했던
지난 여름 내내
텃밭 옆에 있는 오래된 헛간 지붕을 덮고 올라가는 박덩쿨이 어찌나 기세 등등한지..
저녁무렵이면 흰꽃이 장관을 이루었지요.
오늘은 둥그런 박을 몇개 따와서 맛있는 저녁반찬으로 해먹었습니다.
하얀 박을 보니,
저는 별로 한일도 없이 봄. 여름. 가을이 밥상 위에 모두 펼쳐지는 느낌이라서..
괜히 송구스럽고 그랬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날씨가 바뀌니, 초보 농사꾼은 처음해보는 배추농사가 걱정반 기대반입니다.
추석 직전에서야 겨우 심어놓은 배추...
하필이면 일찍 심은데다가 물도 많이 주어서 벌써부터 초대형 배추가 기대되는
아랫집 배추를 보면
기가 팍, 죽어있다가도..
따끈한 가을햇살에 반들거리는 우리 배추들 잎사귀를 보며 한시름 놓습니다.
어쨌거나, 일단 옆에가서 앉아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거든요.. ^^
우리 같이 잘해보자고,
조금 힘들더라도 끝까지 같이 가보자고.
내가 늦게 심어서 미안, 내가 제때 물을 못줘서 미안.
지나간 보름보다 앞으로 남은 두달동안 더 살뜰하게 지내자..
한낮의 햇빛아래 힘들어하는 어린 배추를 보며 마음속으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벌레들이 유난히 좋아라하는 배추.
벌써부터 구멍이 숭숭한데... 어쩔까...
맛있는 유기농 배추를 몇해째 손수 농사지으시는 어른께 여쭈었더니
목초액에 매실액비를 같이 뿌려주면 벌레도 막고 영양제도 된다고 해서
농약 대신 정기적으로 사용해볼 요량입니다.
며칠전에 한번 사용해보니 숯냄새 매실냄새가 참 좋아서
우리 배추도 맛있게 자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
배추농사는 초기에 한달이 결정적 이라기에
서둘러 물도 주고, 가을에 싹틔운 풀도 뽑아주고 왕겨도 뿌려주고 유난을 떨다가 드는 생각.
다른집들은 주로 하는 농사가 따로있고 김장배추는 곁농사정도 밖에 안되던데...
나는 언제 커서 뒷짐지고 여유있게 논두렁 밭두렁 걸어볼까...
뱁새가 황새 다리 처다보듯... 끝이 안보이네.ㅋㅋ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
처음 해보는 배추농사가 참 신통방통하고 재미가 나니
금새 일어나서 하던일을 후다닥해치우곤 합니다.
절로 신명이 나고
신바람을 일으키는 농사를 지어 세상 사람들과 골고루 나누어 먹을 수 있다면
무엇도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단 생각도 해보구요~
배추밭을 나서면 한눈에 보이는 논.
첫이삭이 눈물겹던 그 논을 한바퀴 휘~ 둘러보며
가을바람을 한아름 안고 돌아오니...
어이좋다 ! 즐겁구나 ~ 행복하구나 ~ 하고, 웃게됩니다. ^_^
그래서. 오늘도 참 좋은 가을날 입니다.

▲ 치렁치렁 늘어진 박 넝쿨 ~ 잎사귀가 너무 무성해서 박은 보이질 않네요 ^^ ;

▲ 배추벌레가 먼저와서 드셔보니, 음~ 맛이 괜찮다고... ㅋ (제발 쪼금만 드시길...ㅠㅠ)

▲ 아 ~~ 기다리고 기다리던 황금들판이, 이제막 시작되는 듯.. ^^

▲ 사천큰들(완사) 사무실 앞 풍경 ! 억새가 꽃을 피우니 가을 느낌이 물씬 ~
가을과 함께 찾아온 비염 주의보 때문에 힘든 단원들은 어찌하오리까,,,,ㅠㅠ 부디 힘내셔요 ~

▲ 마당극 '흥부네' 에서 사용할 대형 그림을 그리는 춘우형~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큰 그림을 슥슥 그릴 수 있는지.. 저는 도화지에 그리는 것도 너무 힘들던데ㅜㅜ..)
해질녘에 드리워진 은행나무 그림자가 또 하나의 그림이 되고, 분위기 조~오타~~ !!


▲ 며칠전에 주워온 밤이랑 수수, 조 이삭들 ~~ 모두들 풍성하고 즐거운 가을 되세요 ^^
댓글목록
쿠님의 댓글
쿠 작성일
시내버스를 타면 논은 많이 보게 되는데 올해는 계속된 비 때문에 죽어버린 벼가 많더군요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논을 보시면서 "아이고, 많이 죽었네..." 하시고요
우리 큰들 논은 어떻게 됐을까 궁금했는데... 정말 예쁘게 자라고 있네요!!!
아직 한 번도 못가봤지만ㅜㅜ 못도와드려서 죄송하고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농사 만세!
입주민님의 댓글
입주민 작성일
진숙아,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ㅠㅠ
춘우형도, 쿠미도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ㅠㅠ
참네.. 자판위에 손을 올리고 한참을 머뭇거려도 할 말이 그것 밖에 없네요.
아직 논에도 가보지 못했고 춘우형 그림 그릴때 물 한잔 떠 준 적 없는 나로서는
다른 말을 하기가 너무 부끄럽고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ㅠㅠ
숙연님의 댓글
숙연 작성일
에고... 초보농사꾼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참 숙연해집니다.
이 좋은 가을날... 극단은 전국방방곡곡을 돌며 공연 다니며
어이좋다 ! 즐겁구나 ~ 행복하구나 ~ 하고,...
얼마나 웃어봤는지 돌아보게 되네요.
더 신명을 내야겠어요. 고마워요~ 배추씨님 ^^
덕분에~님의 댓글
덕분에~ 작성일
덕분에
늘 고마운 사람이 있다는 걸,
잊지 않고 살아가게 해줍니다
^^!
소님의 댓글
소 작성일
재주꾼은 거기, 큰들에 다 모여있네요~ ^^
'들이 커서', 온갖 것(!)들이 쑥쑥 자라나보아요~ ^^
저는 약치는 게 싫어서
나무젓가락 들고 배추밭을 누볐었어요.
배추 고갱이 속 깊숙히 들어가 있는 녀석들은 약으로도 없애지 못하거든요.
하얀 배추나방 팔랑거리기 시작하면 알을 깐다는 건데
조금 지나면 초록색 벌레들이 진을 치지요.
나무젓가락이나 핀셋들고 한포기한포기 벌레잡아주는 재미도 뭐, 제법 괜찮은데
제 의지대로 하기엔 저는 아직 미약한 존재랍니다. ㅜ.ㅜ
'비염'에는
질경이 씨앗을 참깨처럼 볶아서,
그것으로 물을 끓여 수시로 마시면
비염치료에 아주 좋대요.
우리 동네 농업기술센터 직원이 알려줬어요.
날 좋은날, 질경이 씨앗 훑으러 다녀보시어요. 씨앗 훑어다 어디 빈 공터나
논두렁 밭두렁에 뿌려두시면 내년에 수확할 수 있어요^^
춘우형~
그림한점 준다더니 언제나 줄랑고~
형 더 유명해지기 전에 한점 꼬불쳐둬얄텐데~ㅋㅋ
큰들 농사 대풍기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