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우리밀이 자란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초록 작성일2014.05.20 조회4,069회 댓글4건본문

2014.2.10
작년 늦가을, 벼베기를 마친 논에 밀씨앗을 뿌렸습니다.
늦게 싹을 틔운 밀은 손가락 길이만큼 작은키로 겨울을 보냈습니다.
멀리서보면 마치 텅 비어있는 빈논처럼 보였지요.
산골짜기 논이라 햇살도 조금 부족하고, 물빠짐도 좋지 않아서
밀농사가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에,
큰들 식구들이 삽을 들고가서
배수로의 물길을 틔워주는 작업에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햇살이 따뜻해지는 봄이오고,
양지바른 곳에서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이웃동네의 밀을 보았습니다.
우리밀은 자라는 속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밀을 갈아엎고,
차라리 이른 모내기를 준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논을 채워가는 푸른 밀밭을 마주하면
다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논둑을 걸으며 생각에 잠겼습니다.
일주일만... 보름만...
더 기다려 보자..
.
.
.

2014.3.28

2014.4.18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에서도 보고..
밀은 어느새 무릎높이만큼 자랐습니다.
푸른 청년의 밀밭이 아침햇살에 반짝입니다.
.
.
.

2014.4.18
4월 18일. 드디어 밀이삭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걱정과 두려움은
감사와 설레임으로 바뀌었습니다.
무당벌레, 잠자리, 미꾸라지를 만났고
밀밭 사이에 콕 박힌 고라니 발작국을 보았습니다.
논둑에는 꽃다지, 황새냉이, 씀바귀가 꽃을 피웠습니다.

2014.5.12

2014.5.12

2014.5.19
아카시아 향기를 품은
오월의 바람은 달콤했습니다.
밀씨앗을 뿌린지 벌써, 7개월째 입니다.
이제 단단하게 속을 채워가고 있는 밀은,
앞으로 20여일만 기다리면 수확이 가능 할 듯 합니다.
추수하는 그날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지만...
지금, 이것만으로도 참 경이롭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겨울에서 봄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 밀을 지켜준 사람들.
따뜻한 마음과 눈길로 바라봐주었던 큰들 식구들이 있어
참 고맙고 든든했습니다.
그리고..
바다에서 전해 온 비통한 소식 때문에..
모두들 슬픔에 잠긴 봄..
꽃을 보고 있어도 마음이 시큰거렸습니다.
다시 그 아픔 딛고, 함께 위로하며 힘을 모으면
새로운 봄이 오겠지요.
그 봄을 우리가 만들 수 있겠지요.
저도 밀밭에서.. 간절히 마음 모으겠습니다..
댓글목록
공감님의 댓글
공감 작성일
지금이라고 갈아엎어야 하나, 기다려야하나..... 그 사이에서 얼매나 갈등했을꼬....
초록님, 감사합니다~.
함께 견뎌봅시다~ ^^;
재현스님의 댓글
재현스 작성일
비 온뒤에 땅이 굳는 것 처럼..
메마른 아스팔트 위에 풀 한포기가 자라나는 것처럼
사진의 싱그러운 밀밭처럼
모두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줄
그런 따듯한 봄이 올거라고 믿습니다..^^
자유님의 댓글
자유 작성일
나도 가끔 우리 밀밭에 들렀는데....
그때는 이미 푸른 다른 논들 떠올리면서 과연 저게 잘 될까? 하는 불안을 더 많이 느꼈던 것 같은데
그럴때 , 남들과 비교하기보다는 우리 밀이 조금씩 자라는 그 자체에서 희망과 가능성을 보던
초록님의 이야기가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했었어요.
오늘 아침 이 글을 보니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드네요.
혼자서 마음 많이 졸이면서도, 끝가지 포기하지 않은 초록님 멋쟁이 ^^
우리 삶도 그렇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