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 영감 줄리엣 할멈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2025.09.18/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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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주큰들 작성일2026.06.05 조회7회 댓글0건본문
■경남 연극 신작 2.
산청 극단 큰들 〈황혼로맨스 - 오늘부터 1일〉
복지관에서 만난 노인들의 사랑 다뤄
11일 큰들 공연예술제에서 초연
도내 극단들이 9, 10월 잇달아 새 작품을 발표합니다. 이 시기에 내보인 신작은 이듬해 경남연극제에 출품하기도 해 경남 연극의 흐름을 읽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큰 것은 기대와 설렘입니다. 신작을 내보여야 하는 극단은 긴장감이 크겠지만, 그 사정을 잘 알 리 없는 관객들은 신작을 기대하며 설렘을 안고 공연장을 찾기 마련이지요. 관객 처지에서 설렘만을 갖고 도내 극단들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기사로나마 작품을 접해보고, 마음이 닿는 연극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연극의 특징 중 하나는 다른 이의 삶을 살아보고 이해하는 데 있다고 하죠. 이는 무대 위에 서는 배우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닙니다. 연극을 보는 관객들도 이 시대에서, 이 사회에서 사는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무슨 일을 겪는지 알 수 있을 테죠.

산청 극단 큰들이 황혼의 사랑을 다룬 마당극 <황혼로맨스 - 오늘부터 1일>을 신작으로 내놓았다. 원작은 이상우 부산 극단 해풍 연출이 쓴 연극 <노(老)미오와 줄리엣>이다. 큰들은 대부분 창작 작품을 발표해왔지만 이번에는 기존 작품을 재구성하는 새로운 도전을 해봤다. 1시간 30분짜리 연극을 1시간짜리 마당극으로 만들었다. 제목인 ‘오늘부터 1일’은 연인들이 교제하는 첫날이라는 뜻으로 상대에게 고백할 때 쓰는 신조어다.
큰들은 초고령화 사회에 놓인 산청군에서 노년층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었다. 힘든 생활이나 삶에 대한 넋두리 대신 사랑 이야기를 선택했다. 여기에 세대 갈등, 이웃 갈등, 노인 고독사 등을 요소로 집어넣으면서 같이 고민할 수 있는 마당극으로 만들었다.
작품은 마주 보는 두 국밥집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한쪽은 ‘산청돼지국밥’, 그 맞은편은 ‘원조 순대국밥 윤영환’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문의 싸움으로 사랑이 갈라진 것처럼, 이 두 국밥집의 갈등과 그리고 이어지기 어려운 사랑을 상징한다.
다음 장면은 신나는 ‘행복복지관’이다. 실버미팅이 있는 날이라 극중 인물 공정숙은 신이 났다. 남자 쪽도 차상태의 설레발로 들뜨긴 마찬가지다. 제주도 여행권을 두고 게임을 시작한다. 그 전에 짝이 맺어지는데 뽑기에서 줄리엣을 뽑은 양미숙과 로미오를 뽑은 김운호가 한 팀이 된다. 게임에서 1등을 한 양미숙과 김운호는 부끄러운 듯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가까워진다. 자녀들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했던 하고 싶었던 일들을 공유한다. “자전거를 타보고 싶어요.” “비눗방울을 불어보고 싶어요.”
이들은 자녀들 눈치로 자전거만 못 탄 것이 아니라 연애도 사랑도 하지 못한다. 각 자녀 운영하는 국밥집이 서로 경쟁하며 갈등하고 있음을 알게 되면서다. ‘산청돼지국밥’은 김운호가 40년간 운영하고 아들 철민에게 물려준 식당이다. 그 맞은편에 철민의 친구인 윤영환이 최근 순대국밥 식당을 열었다. 철민은 간판에 적힌 ‘원조’가 거슬려 윤영환과 갈등을 빚는다.

철민과 윤영환의 갈등은 결국 김운호, 양미숙의 대결로 이어진다. 이 둘은 처음에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대결을 펼친다. 이때 조리도구로 얼굴을 가린 상태로 이 둘의 갈등과 대결을 펜싱으로 표현해 관객들 웃음을 자아냈다. 양미숙은 자신의 대결 상대가 김운호라는 것을 알고 이별을 고한다. 김운호의 아들 철민도 아버지의 연애를 노골적으로 반대한다.
적적하고 마음 둘 데 없던 김운호는 오래된 친구 영섭을 찾는다. 하지만, 영섭은 텔레비전을 크게 틀어놓은 채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 김운호는 영섭의 장례식을 치러주는데, 복지관에서 실버미팅을 같이했던 친구들도 모여서 손을 보탠다. 고독사이지만 장례식장에는 통곡도 비통도 없다. 이들은 관객들도 조문객으로 맞이하면서 영섭의 죽음을 외롭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 나이가 어때서’를 신명 나게 부르면서 장례식을 마무리한다. 작품은 누구나 맞이할 수 있는 슬픔, 마음속에 묻어둔 상처를 다루지만, 결국 웃음으로 매듭짓게 하는 힘을 지녔다.
복지관의 친구들은 복지관에서 같이 써 본 유서를 일부러 아들 철민이 잘 보이는 곳에 둔다. 아들 철민은 아버지 김운호가 나쁘게 마음을 먹었다고 착각해,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이를 본 양미숙은 김운호에게 한달음에 달려가 마음을 고백하면서 기존 <로미오와 줄리엣>과 다른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작품 끄트머리에 김운호와 양미숙, 복지관 친구들은 제주도로 함께 여행을 간다. 유채꽃밭에서 돌하르방과 사진을 찍는 장면이 연출된다. 배경과 돌하르방 모형은 무대 장치에서 펼쳐진 것이다.
박춘우 무대미술감독의 아이디어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박 감독은 “관객들이 평소에 짧은 영상을 보기 때문에 연극도 장면 전환이 자주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소품이나 무대 장치도 다양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의 연출과 무대미술, 연기에 들인 공은 티 나지 않게 스며들어 있다. 마치 노인들이 지혜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발휘하는 순간을 보는 기분마저 든다.
이 작품은 11일부터 14일까지 큰들마당극마을에서 열린 공연예술제에서 첫선을 보였고, 19일 오후 7시, 20일 오후 2시 산청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관객을 만날 예정이다. 관람은 무료다. 큰들은 이번 작품이 관객과 1일, 10일, 100일까지 훌쩍 넘기기를 고대하고 있다.
문의 055-852-6507·010-8512-9158.

/주성희 기자
원본 기사 링크 - 로미오 영감 줄리엣 할멈 “사랑에 나이가 있나요” < 산청 < 지역 < 기사본문 - 경남도민일보
